동인은 어느 틈바구니에나 존재한다 - 01
요 며칠, 제 가슴 속에서는 언제나와 같이
충만한 동인의 샘물이 흘러 넘치고 있었습니다.
포스팅은 없었지만
...뭔가 이쯤되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동인은 이 세계에 만연해 있다]
동인이랄까, 19금이랄까.
여하간 제 세계에서 흘러넘쳤던 것은 당연하지만요.
지금은 제 세계만이 아닌, 외부의 세계에서도 동인은
언제나처럼 흘러넘치고 있었구나, 라고 새삼 깨닫는 중이랄까요.
1. 엊그제, 그러니까 화요일.
학교에 가는 날이었는데, 오전 수업 오후 수업이 연계되어 있던 것이
오전 수업이 인터뷰 테스트였던지라, 10분만에 끝나버린 겁니다.
최근 수면부족이 조금 이어지고 있으니
친구 자취방에 가서 오수라도 즐길까 하던 참에
한국인 교수님께 부탁을 받아,
일반 교양 관련의 일본 문화 수업 시험지 채점을 거들게 되었는데요.
중간에 교수님은 선약이 있어 나가시고,
저와 제 지인이 남아서 슥슥 채점하던 중에
저는 보았던 겁니다.
Q 20. [일본에서 최초로 벼농사가 시작된 시대는?]
→ A. [야요이彌生]
...가 원래의 답인데.
20. [야오이 시대]
맨발로 뛰쳐나가 맞이해야 마땅할 시대다!!!
...따위의감상으로 한껏 즐거워졌었습니다.
;ㅁ;
고마워요, 이름모를 N대 X과 누구씨.
(그런데 이거 의외로 오답이 많습니다. [오] 와 [요] 의 한끗 차이라서...
타과 학생들은 50% 확률로 틀려주셨더군요.
고맙기도 하지...)
그리고 채점하던 중에 또 하나 멋진 답변을 발견했지요.
Q 27. [에도시대, 카톨릭 교도를 박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근처 절에 등록하여 불교도가 되도록 한 제도의 이름은?]
→ A. [데라우케寺請]
..가 원래의 정답인데.
27. [다레우케]
'誰(누가)' '受(수)'
(..............)
격하게 감각적인 오타다...!
...그래요, 미아베인지 아베미인지는 중요하죠.
(...저야 곧 죽어도 아베미겠지만...)
즐거운 채점이었습니다.
역시 이름모를 누구씨, 고맙습니다.
이 오타는 ONLY ONE☆ 당신뿐이었어요.
2. 마찬가지로 화요일, 점심값을 주시고는 미안하다며
선약을 위해 나가버린 한국인 교수님.
지인과 둘이 남아 밥은 먹어야겠는데 나가긴 성가시고
그렇다고 교수님 연구실에서 냄새나게 뭐 시켜먹기도 뭐하고 해서 고민하다가
저는 옆방(연구실)에 계시는 일본인 교수님들께 컨택트를 해,
그쪽 방에서 같이 음식을 시켜먹자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함께 식사하는 것이 오랜만이었던지라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다가-
교수님 가운데 미혼의 젊은 여자분이신 S교수님께서 문득 이야기를 꺼내신겁니다.
[米상, 작업은 잘 되어가고 있나요?]
[아, 네. 덕분에.]
[그러고보니,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米상처럼 연애물만 그리는 사람이 있어요.]
[아하하하. (...전 그 연애물 아닌데요...) ┐-]
[그런데 말이죠, 그 사람은요.]
[네.]
[남자와 남자의 연애를 그린다지 뭐예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저도 모르게 양손을 뻗어 S교수님의 손을 붙잡고
소개해달라고픈 마음을 꾹 억누르고는 어정쩡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는데-
이전부터 슬쩍 제 취미에 대해 찔러오고 계시던 K교수님(男)께서
웃으면서 말씀을 이어버리신 겁니다.
[米상도 그런 거 그리잖습니까?]
그거 당신만 알고 계시던 건데요. K교수님...
그워어.
┐-
뭐, 어차피 굳이 거짓말할 것도 없고 해서 멀쭘하긴 해도 밝혀진 사실,
웃으면서 다른 화제로 넘어가려는데-
S교수님, 이번에야말로 급사할 비공을 찌르신 것.
[그랬어요? 그럼 米상도 알런지도 모르겠네요.
그 사람, 분명 잡지에서 연재하고 있고 책도 냈다고 했으니까...]
[...잡지요?]
[응, 분명 쥬 뭐라는...]
[쥬네에에에에에에에!!!!!!!!! (JUNE)]
다음 순간, 저는 자연스럽게 S교수님의 두 손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분 팬네임이...?]
[저는 잘 모르는데요.]
[그럼 연락처라던가...]
[일본의 집에 있어요.]
[...교수님, 연말에 일본 또 다녀오실 거죠?]
[그야, 그렇겠지요.]
[...사랑합니다.]
[나를, 아니면 그 분을요?]
[JUNE를요.]
...뭐, 이러한 정체불명의 대화 끝에 올 겨울에 댁에 돌아가시게 되면
그 연락처와 그분에게서 받은 코믹스를 가져와 보여주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졸업하고도 결국 또 놀러오게 되겠군요.
ㅜㅅㅜ
(그나저나 진짜 누굴까...궁금해 죽겠습니다;
후지 타마키상이라거나 하면 행복해 죽을텐데.)
그러면서 거기에 한 마디 더 덧붙이는 S교수님.
[아, 그럼 米상도부녀자(腐女子)인가요?]
[...교수님 뭔가 쓸데없이 프로페셔널한 단어를 자연스레 입에 올리고 계신 건 아닌지...?]
[그게 뭡니까?]
K교수님도 한 몫 거들어 그 뒤는 일반인도 알기쉬운 동인토크.
(...)
실은 이 뒤로도 몇 가지 일이 더 있었습니다.
뭔가, 한 포스트에 다 담아버리기엔 농도가 진하다고 여겨지므로
적절한 밸런스 유지를 위해 오늘은 여기까지.
새벽에 그림 안 그려지면 뒷편 올라갑니다.
배부르고 느긋한 저녁입니다.
그림만 잘 그려지면 더할 나위가 없으련만.
ㅜㅅㅜ
그럼, 이만 또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 내려갑니다.
즐거운 밤 되시기를.
쟈하라독시드.
덤.
지난 주 일요일에 JPT 시험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버스로 2정거장, 자전거로 15분 거리에 있는 구내의 중학교에 다녀왔는데요.
중략.
여하튼 가뿐한(...) 마음으로 시험을 마치고,
급히 나가는 사람들과 복도에서 웅성이는 것이 싫어
조금 늦게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려던 참이었습니다.
(*전화번호 마지막 4자리는 일부러 지웠습니다.)
잘 팔리십니까...?
(......)
뭔가 쓸데없이 가상한 노력이었습니다.
대체 저 '지금 콜' 은 뭐란 말입니까.
하긴 '찰스다윈 팜' 이 아닌 게 어디야- 라고
스스로 위안삼았습니다.
ㅜㅅㅜ
시험을 마치고는 교보문고 잠실점에 들러 은혼 신간(20권)을 사가지고
와이마켓으로 룰루랄라 향했었다는 후일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