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2 이야기
종강 전날, 산더미같은 싹 난 감자산을 앞에 두고
쌀월드에는 이변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감자싹은 다 도려냈다. ;ㅁ;)
아침에 일어나서 심부름 나가는데,
빌라 대문 아래서 왠 기이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별 생각없이 하수구 쪽을 보고는 기겁했습니다.
새끼고양이가 한 마리 있더군요.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아파보이는 채로.
제딴에는 따가운 볕을 피하려고 기어들어간 곳이
빌라에서 물 빠지는 지저분한 하수구 통로 안쪽.
눈에서 나온 고름이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어,
미안한 소리지만 동정심에 앞서 혐오감이 들 정도였답니다.
이거 괜찮은건가 하면서
일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봤는데,
그 때는 정말 기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울음소리는 아예 뒷전이고, 호흡마저 두 박자씩 쉬어가며 하는 것이
그야말로 죽기 직전이어서.
정말 더럭 겁이 났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또 기르는 친구가 주변에 있기에
급히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근처에 있는 동물병원을 추천해주기에 일단 뛰었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눈을 보고 소독하고, 안약을 넣어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실명 할 뻔 했답니다.
사실, 지금도 자신있게 실명 절대 안 해요, 할 수준은 아니라고 하네요.
몸이 약하게 나서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자란 모양인데,
그나마도 결막염이 심해져 죽을 지경이 되니 어미가 버리고 간 것 같다고.
그나마도 병원 왔으니 망정이지, 이대로 밥도 못 먹고 있었으면
십중팔구 오늘내일 하다 죽었을 거란 말씀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그래도 그럼 이제 괜찮단 소리구나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답니다.
항생제 먹이고, 소독하고, 영양제도 맞고 해서
안약과 고양이 사료을 사가지고 돌아와서는 대책부터 궁리를 했습니다.
저희집은 환자가 있어서 동물은 일절 못 기르거든요.
이전에도 한 번 비슷한 일이 있긴 했지만
그 때에는 고양이 자체는 건강했고,
무엇보다 금방 좋은 주인분을 만나서 지금은 미묘로 자라 해피 라이프.
그런데, 심난하게도 이 아이는 그게 안 되겠더군요.
고양이 어지간히 좋아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돈 들여야 하고 당장 병원 데리고 다녀야 하는 손 가는 도둑 고양이를
누가 데려가겠나 싶어서 일단 잠시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집에 못 들이니 밖에는 못 두겠고,
창고에 사과박스 채로 넣어두었다가 밥 주니 그래도 잘 먹기에
조금 안심했습니다.
저녁에는 퇴근하고 돌아온 고양이를 기르는 친구 햄스의 도움을 받아
깨끗이 씻겼고요.
또 다른 동네 친구인 사부에게 부탁해, 일단 눈이 나을 동안의 며칠간은
사부 집에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씻겨준 햄스에게도, 맡아준 사부에게도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당장 누군가에게 고양이 수발을 맡길 데도 변변치 않아서
내일 당장 학교부터 다녀와야 하는데
그럼 이 애 밥하고 안약은 어쩌나, 하는 생각뿐이었거든요.
여하간, 지금은 당분간 두고 볼 생각입니다.
하다못해 결막염이 나을 때까지는 이대로 지켜봐야 할 듯.
맡겨 둔 사부에게도 미안하니 얼른 나아야 할 텐데.
하지만 애가 다행히도 아직 작은데다 예쁘게 생겼으니
낫기만 하면 금방 입양될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 결막염 외엔 다른 병이라던가 문제도 없고.
애가 씻기고 밥 주고, 안약 주고 품에 안아드니
목덜미로 안기면서 할짝거리는 것이 붙임성도 좋고
낯도 별로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이즈도 하도 작아서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일단, 위에 적은 대로 당장은 치료를 해야하니 무리겠지만
치료가 끝나는대로 입양을 보낼 생각입니다.
고작해야 오늘 하루,
평온하게 감자 싹이나 파내고
마지막 과제 정리하고 펜선 연습하며 보낼 날이었는데-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넋두리가 되어 버렸습니다만,
쌀내미의 이웃분들-
부디 타로 2가 얼른 나아서 예쁜 두 눈으로 초롱거리며 세상을 보고,
또 좋은 주인님 만나서 곱게 자랄 수 있게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기도해 주세요.
꼭 낫게 해 주겠다고 한 제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타로 2는 진짜 주인님 만나기 전까지의 아명으로 쓰기로 하고 붙였습니다.
이전에도 고양이를 주워다 주인 찾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타로 프로토 타입(...) 이었으니까.
타로 더 세컨드라던가
타로(재) 라던가 타로(속) 이라던가 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오탁 소리 듣기 싫으니 일단 패스.
타로란 이름의 유래는 [존나 빈곤해 보이는 자태] 에서 비롯된 것.
타로 이야기의 타로.
=ㅅ= )
그리고 사진 몇 장.
주워와서, 병원 다녀온 직후의 사진입니다.
매우 꾀죄죄하고 아파 보이지만,
병원에 데려가기 전에 비하면 아주 멀쩡해진 상태랍니다.
꽤 기운차게 울고 있었어요.
눈에 괴인 고름이 그렇게까지 인상을 좌지우지할 줄이야.
사실, 이 아이 좀 데려가세요~ 할 때 그 사진이 있으면 더 좋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걸 찍을 정신이 없었더랬지요.
100m 20초 라인의 쌀내미는 달리기만으로도 바빴습니다.
ㅜㅜ
친구의 집에서 씻긴 뒤에 찍었습니다.
고양이는 원래 물에 들어가면 털이 젖어서 말라보인다고 하지만,
정도가 지나쳐서 어딜 붙잡고 씻겨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오른쪽 눈은 그래도 괜찮은데,
왼쪽 눈은 동공에 반응은 있지만 아직 눈꺼풀을 잘 뜨지 못해요.
그래도, 울음소리는 기운찬데다
사람에게 잘 따르니 마음이 한결 좋습니다.
크기 비교를 위해 한 장 찍었는데...
타로 2가 좀 많이 작아 보이는군요.(;;)
모델이 된 손은 제 손입니다.
일반적인 여자 손 치곤 큰 편이지만,
타로 2가 워낙에 작은 탓에 더 커 보이는군요.
빨리 나아서 건강해져서 좋은 주인님 만나길.
=ㅅ=
저도 종강을 위해 달려야지요.
이만 슬슬 내려가 내일의 준비를 해야겠군요.
원래 오늘의 주 포스팅은 치키님께 선물받은 그랑죠 오르골이 될 예정이었는데
동생이 PMP 충전을 안 해둬서.
ㅜ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좋은 꿈 꾸시기 바랍니다.
쟈하라독시드.
덧.
...새벽의 저주를 받아 타로 2 주제가도 만들어 봤습니다.
타이틀은 주인광고. (홍서범씨의 구인광고. ...모르시려나들...ㅜㅜ)
길가다 보면 왜 그리도 많은지
주인을 찾는 고양이들♪
이제는 나도 정신을 차리고
주인님을 찾아나서야겠네♪
밥은 안 굶기고 잘 주고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고♪
자택근무 단독주택 야행성
다정한 손길과 눈길♪
이런 주인 보신 분
연락 주세요♪
나도 이제 주인님 갖고 싶어요♪
(쿵작쿵작♪)
(...좋-댄다, 쌀내미...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