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여름 코미케 여행기 - 01
밤비행기로 날아간 코미케 전날과, 첫날의 이야기
그리고 화상들입니다.
김포에서 하네다로, 마지막 비행기(8시 20분)를 타고 가는지라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저녁 늦게 나섰습니다.
솔직히 저쯤 되니 외국이라는 개념이 많이 무디어져서 이미 마음은 지방순례;
심지어는 화장조차도 하지 않은 맨얼굴로 아디다스 캡 하나 쏠랑 뒤집어쓰고
집에서 내내 입고 있던 나시에 역시 집에서 입는 청치마에 슬리퍼를 끌고 고대로 갔습니다.
얼굴로 행패부리고 다니기.
그리고는 Y양과 비행기 이륙하기도 전에 기내식을 내놓으라며 발발거리다가
기린 맥주를 마시고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삿포로와 기린 맥주가 입에 맞아요.
그리고는 곧장 일본.
이번에 머문 J양의 집에서 가기 위해
하네다에서 2번 갈아타서 가는 가장 빠르고 간편한 경로를 택해서 갔지요.
그런데 어째 유서가 있으신지 전차 내에 달린 선풍기가
오래전에 잊혀진 향수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밤에 도착해서 별로 덥지도 않았던터라 차라리 좋았지만요.
문이 넓었습니다.
한국 지하철의 최소 1.2배는 되게 생겼어요.
일본 지하철이라고는 그럭저럭 아주 유명한 것들만 타본지라
사실 애번 처음 타보는 노선이 하나씩 생긴답니다.
이번엔 토큐 토요코센과 케이큐센을 처음 타보았지요.
환전한 건 전부 지폐들 뿐이라 도착하면 J양에게 연락하기로 했는데
그거 때문에 천엔짜리 깨야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요코하마에서 길바닥에 어느 친절한 분이 흘려놓고 간 10엔짜리 발견.
감사히 받았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J양에게 연락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잠깐 심심해서 역 앞을 둘러봤는데-
브레멘 거리라고 되어 있더군요.
브레멘 악단이라면, 동화의 그거?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브레멘이 맞았답니다.
독일의 모 마을과 자매를 맺었다나요.
여기저기서 브레멘의 악단 동물 표지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보기는 생각해보니 처음인 땡땡이.
전차가 노면을 달리고 있어서,
그- 애니에 자주 나오는 땡땡땡 하는 소리와 함께
건널목을 막은 바가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하면서 사람의 통행을 규제합니다.
07 오즈 페스티벌.
브레멘 거리이니 오즈의 마법사도 이상치 않겠지 생각하고서는
마침 축제라면 봐줘야지, 하고 즐거워하며 날짜를 보니 10월 7일.
잘 먹고 잘 살아라. (......)
그날은 돌아가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정리를 하고
곧장 잠들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엔 나가야 할 판이라
회포조차도 풀지 못한채로 잠님의 나라로.
새벽 5시가 조금 지난 시각.
밖은 훤하고- 확실히 한적하고, 덥지 않은 것이 좋더군요.
새벽이라기보다는 이른 아침이라는 느낌.
사람의 시선이 없는 차 위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와 지위를 주장하고 있는 야옹님.
심지어 카메라를 들이대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이쪽을 바라봐주시는 당당함.
J양의 집에서 국제전시장(린카이센)까지 가려면
두 번 갈아타야 하는데
이미 첫번째 갈아타는 곳에서 이 지경.
저 앞의 90% 이상의 분들과 저희는 다 한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외길이면 밀어버렸겠지.
;ㅁ;
두번째 갈아타는 곳인 오오이마치 역에서의 광경인데-
여기 좀 무서웠습니다.
사람이 나아갈 곳이 없을 정도로 플랫폼이 그득 차 있어서.
여기서 코미케가 열리는 빅사이트가 있는 국제전시장까지는 스트레이트라서인지
사람 정말 많았습니다.
저와 Y양은 거의 첫차에 가까운 차를 타고 갔음에도
이미 우글우글이었지요.
도착해서 첫번째로 온 차는 인원 초과로 차마 못 타고, 두번째 차를 탔는데-
사실 첫번째 차에 탈 용기가 안 났습니다.
상당히 나이 지긋하신 분이 문에 끼어서
역 스파이더맨(창에 몸 안쪽(배)를 붙인 것이 아닌 그 자세 그대로 등이 창에 붙은 모양새)이
되어서 가시더군요.
가방 같은 것이 끼어서, 성실한 역무원이 돌아다니면서 밀어넣어 주기도 합니다.
첫날은 기업부스 쪽의 일 때문에 걷고 걸어 서홀 입구로.
코미케 입구는 동홀 입구와 서홀 입구, 양쪽이 있는데-
패러디 여성향이라면 일반적으로 동홀입니다만(창작은 서홀)
이번에는 기업부스라는 이유로 서홀 입구로 처음 입장해 보았지요.
회장까지 최소 몇백 미터는 남았는데 이미 한 이십 미터 앞에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앉아 있더군요.
일종의 결계랄까 진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푸른 하늘로 의식 날리기.
이 날, 폭염으로 죽은 사람 나왔었다지요?
코미케에서는 안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긴 탈레반? 나는 인질?]
[...인질이면 물은 주겠지...]
화장실에 가게 되는 것이 두려워 새벽부터 물을 피했던지라
굳이 안 마시고 넘어가려다
나중에는 옆사람, 앞사람, 뒷사람들이 물통만 꺼내도
로또 당첨자를 보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자신을 깨닫고는
결국 Y양과 이야기 끝에 물을 사다 마셨습니다.
게다가 일을 못 하는건지...
일곱시 조금 안 되어 도착했는데 지난번과 달리- 앉히질 않더군요.
입장까지만 해도 당장 세 시간을 기다려야 할 판인데
앉을 자리도 없이 빽빽하게 수용해 놓으니 어디 앉을 수가 있나요.
물론 한두 사람 앉기 시작한 걸 계기로 너도 나도 앉기 시작했지만요.
선물받은 매트가 그야말로 이번 코미케의 구세주였습니다.
비록 다리는 못 펴고 앉았지만.
너무 익숙한 무늬가 있어
순간 엣찌에로군(남친)이 코미케에 온 건가, 라고 멍하니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같은 무늬더군요.
왜 그리 일본인 오타쿠들은
땀을 닦는다거나
땀을 닦는다거나
땀을 닦는다거나
하는 걸까...라고 기분 나쁘게만 여겼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그 생각 고쳤습니다.
닦아라도 주면 고맙지요, 뭐.
┐-
첫날에 등과 목과 팔이 드러나는 탑을 입고 갔었는데,
제 맨살에 타인의 땀이 묻더군요.
히껍했습니다.
여하간 그래서인지 가장 많은 쓰레기 No.1이 페트병, 2위가 타월이었습니다.
뭐, 열에 밀려서 못 주운건지 버린건지야 사실 모르겠지만.
코미케의 상징이랄 수 있는 저 건물이
증오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0시가 마악 지났을 무렵.
입장이 시작하는 10시는 진즉에 지났는데
옆에 천 명 단위의 사람들이 그냥 머무른 것이 쉬프트 키 누른 곰플 위의 야동인 겁니다.
게다가 양산을 써도 햇빛이 차단되지 않고 계속 파고 들어오는 실정.
옅게 펴바른 썬크림은 이성과 함께 증발해버리고.
가까이서 보긴 처음이라 이동하면서 파바바박 찍었습니다.
입장시간에 입구에서 멍하니 서서 찍었다간
몸으로 교훈을 체득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누가 뒤에서 덤벼들지도 몰라요.
아니, 칼은 안 쥐어도 돌돌이로 밀어버릴 가능성은 90%이상.
(나머지 10%는 배낭과 맨몸.)
그러나 서홀로 들어와서도 기업부스로 가는 길에서는 잠시 스톱.
대단히 혼잡하므로 천천히 입장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데-
동홀은 막 뛰어갑니다.
보내줘! 보내줘! 보내달란 말야!!!
첫번째 건수인 기업부스 건 하나를 2시간 넘게 걸려 힘겹게 마치고
동홀에 일이 있어 잠깐 돌아왔다가 헛탕을 쳤습니다.
부탁받았던 책 하나가 매진되어버려서.
이건 동홀 2층에서 1층을 찍은 것.
얼핏 고해에서 헤엄치는 중생을 찍은 것 같기도 하지만...
문제는 찍은 제가 있었던 곳도 어차피 고해였기에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1층이나 2층이나 지옥은 지옥이랄까.
층이 나뉘어져 있어봤자발에 치여죽을 게 사람인 건 어차피 사이좋게 동등.
한자로 그대로 국제전시장.
그리고 그 옆 역이 도쿄 텔레포트.
처음엔 역 이름을 듣고 잠시 지극히 단순한 도라에몽적 상상을 했지요.
첫날의 Y양과 단둘이서 벌인 기아체험은 그럭저럭 마치고-
나카노로 향했습니다.
사다하루도 져스터웨이도 쵸파도 너무 귀엽습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라면서 좋아했지요.
만다라케는 아니지만, 브로드웨이 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
굿즈 등을 잔뜩 내놓고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마치 불나방이 된 기분으로 흐느적흐느적.
2, 3층에 걸쳐서 굿즈관, 동인관, 코믹스관 등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4층 이상은 잘 모르겠군요.
2층엔 여성향 동인지, 그리고 3층엔 코믹스가 있어
그 위로는 사실 가본 적이 없거든요.
1층은 만다라케가 아니고요.
코미케 끝난 뒤라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북적북적.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라거나 할 경우에는 역시
코미케만 달랑 보고 돌아가긴 아깝기도 해서인지-
코미케 관련 날에는 언제나 평소보다 붐빈다고 합니다.
코믹스 관에서 본 고야성님의 'stigmata ~ 적련의 성자 ~'.
3권이 완결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카탕이 표지에 예쁘게 나와서 흐뭇.
당당하게 앞에 진열되어서 기뻤습니다.
자꾸만 동인관으로 빠지려는 쌀내미의 페이스에 지친 Y양.
아예 짐을 맡겨놓고 계단에 앉아 스킵비트 신간을 읽는 그녀.
저는 마음 편하게 짐 맡기고 여성향 동인관으로 가서 룰루랄라.
최근 굿즈나 피규어는 피하는 편인지라,
책만을 사가지고 돌아오다가 브로드웨이의 마츠키요에 들렀습니다.
마츠모토 키요시라고 하는 일용잡화 할인점인데,
가타카나로 노란 간판에 쓰여있는데다,
도쿄 내에서는 어딜 가도 있다고 할 정도로 많습니다.
함께 간 Y양의 화장품을 사기 위해서였는데,
그 김에 저도 같이 구경했지요.
살까말까 꽤나 고민하게 만들었던 히로인 아이 메이크업 시리즈.
[눈물에 지지않는 아이라이너] 라던가
[눈문이 어울리는 아이라이너] 라던가
[하늘까지 닿아라! 마스카라] 라던가
[우아한 박력! 마스카라] 라던가.
그런데 사실 좀 더 탐났던 건-
이쪽.
오스칼 마스카라와 마리 왕트와네트 마스카라.
당신들같은 눈썹을 가졌다간 다카라즈카라도 나가야 할 성 싶으니
고이고이 사양.
...이랄까, 사실 갖고 싶었으나 지금 쓰는 마스카라도 있고,
뭣보다 품질보증이 문제인지라 참았습니다.
대신 다른 것을 샀지요.
...랄까, 사랑에 빠졌지요.
엣찌에로군을 만나서 사과했을 정도. 정말로 반해버려서.
첫날은 J양의 스프레이 데오드란트를 빌려가 해결했는데-
따라간 김에 마츠키요에서 찾아보니 로션 타입의 데오드란트가 있기에
375엔이라는 가격도 착하고 해서 비누향이라기에 하나 구입했는데-
이거 최고더군요.
그야말로 땀구멍 막아주는 수준.
그 덥고 쨍쨍한 날, 저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돌아다녔습니다.
이거 안 바른 등짝이라던가 하는 데만 빼고.
뭣보다 땀이 조금 밴다 해도 땀 냄새는 전혀 나지 않고 비누향만.
그래서 이틀째부터는 거의 바디로션 수준으로 온몸에 바르고 누볐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혼잡합니다.
시부야와 신쥬쿠는 복잡, 복잡.
그렇게 첫날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날은 돌돌이를 안 끌고 간 데다
짐이 많아서 책은 거의 사지 못했지요.
코미케 둘째날 대기줄에서 읽기 위해 산 '은혼' 19권.
제가 일본 오기 직전에 나왔지요, 대강.
톳시와 긴쨩의 이야기에 거의 쓰러져가며 봤습니다.
오타쿠 히지카타를 보실 수 있습니다.
ㅜㅜ
본연의 목적이랄 수 있었던 백일의 장미 1, 2권.
사실 1권 사러 간 거였는데 2권이 나왔더군요.
(...사실 2권 나올 줄 몰랐습니다;)
여하간 눈에 띄었으니 냅다 구입.
내내 사야지 사야지 하고 있었던 오와다 히데키상의 '기동전사 건담씨' 2권.
만다라케 점원 대단해요.
'오와다 히데키의 기동전사 건담씨' 라고 하자마자 위치 어디에 있다며 당장 갖다줘.
이 사람들 점내에 무슨 책이 어디에 있고 그게 어느 출판사의 어느 작가 건지
통채로 달달 외고 있는 것?
;ㅁ;
다카구치 사토스미상의 못 본 작품을 발견해서 그냥 일단 샀습니다.
'세상은 우리들에게 달콤하다' 총 4권.
표지만으로도 포스에 눌리겠군요.
누가 사토스미상 아니랄까봐.
ㅜㅜ
이것도 다카구치 사토스미상의 작품.
...뭐랄까...톤 센스에 거의 기절할 듯 웃어가며 읽었어요.
일본어인데도 불구하고 날린 분위기에 젖어 10분도 안 걸려 한 권을 다 읽어버리질 않나.
여러모로 이 분 대단해요.
ㅜㅜ
첫날의 코미케 - 나카노 순회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X발 타입문의 추억을 남기고;
타입문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2시간 50분 기다려서 아무것도 못 사고 돌아오면 저 소리 나올 만도 합니다.
양해를.
(게다가 불똥이 두려웠는지 교육이 덜 되었는지
매진 소리가 나오자마자 도우미들이 해산해서 사악 자취를 감춰버려
벙찐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는 Y양의 후일담도 있었고요.)
그러고보니-
겨울 코미케때처럼 밥은 못 먹어도 체력은 아끼잔 생각에
가져갔던 드림 카카오 초콜렛.
고체상태에서 액체가 되었다가
다시금 고체 상태로 돌아가셨더군요.
줄을 서다가 문득 배가 고파져서 통을 열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가 기겁했습니다.
진득한 액체가 손에 닿아서.
그리곤 집에 돌아와보니 저 상태로 굳어 계셨습니다.
기념품으로 한국에 들고 들어오려 했지만 뭔가 걸리잖을까 고민한 끝에-
...잊었습니다.
J양, 미안.
┐-;;;
그렇게 오늘의 수다는 여기까지.
코미케 같았으면 지금 전차 타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여긴 아직 새까맣기만 하군요.
주침야활에서 정상인 생활로 돌아가긴 그리도 힘든데
왜 역 서클은 그렇게도 쉬운 걸까요. 삽시간입니다, 그야말로.
자야겠군요.
내일은 오전중에 일어나서 처리할 일도 여러가지 있고 하니.
그럼, 좋은 꿈 꾸고 계시기를.
쟈하라독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