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에게의 링크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히로인 가운데 한 명인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에 관한 포스팅입니다.
신극장판, 당장 1편인 '서(序)'의 개봉 당시에
한동안 블로그를 에바 관련 포스트로 채웠을 정도로
에반게리온이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저입니다만,
요 최근- TV판과 구극장판 2편을 몇 번이고 돌려보던 중에
한 가지 새로이 깨달은 점이 있었기에
그 점에 대해서 횡설수설하나마 적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포스팅을 하려고자료를 모으면서-
스스로도 의외라고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TV판을 보는 내내 저는아야나미 레이의 팬이었고,
첫 번째 극장판인 'DEATH & REBIRTH' 를 보고 난 뒤에도아야나미의 팬이었으며,
두 번째 극장판인 'The End of EVANGELION' 을 보고 난 뒤에도
가장 좋아했던 건 역시 아야나미인데 말이죠.
성우도 아야나미가 최고.
몸매도 아야나미가 최고.
미소도 아야나미가 최고.
앨범도 'The Birthday of Ayanami Rei'가 최고.
...라고 하면서 정작 제 블로그의 에바 관련 인물 첫 포스팅이 아스카가 될 줄이야.
...뭐, 다른 캐릭터는 별로 안 할 것 같긴 합니다.
그저 아스카에게 느낀 어떤 링크를 적어보고자 함이니까요.
서두가 긴 걸 보니 안쪽도 깁니다.
신나게 캡쳐해가며 적어봤습니다.
*일단 구극장판을 중심으로 적는 포스팅이기 때문에,
TV판의 다이제스트라던가 하는 그런 친절함이 일절 배제되어 있습니다.
양해를.
저는 사실, TV판 8화에서 아스카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거의 눈살을 찌푸린 채로 그녀를 지켜봤었습니다.
뭐, 그야 지금이라면 [최상급 츤데레(현시연의 해석을 빌어, 새침튕김.)]네, 라고
웃으면서 넘기겠지만
구극장판을 보던 시절이 제가 중학생 때였거든요.
참, 뭐랄까.
딱 잘라 말하자면.
[얘, 좀 돈 애 아니야?]
...였달까요.
당시에도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신지가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로
아스카의 돌출적이고 도발적이며 나대는 행동거지가
납득되지 않았던거죠.
그리고, 그리 생각한 게 저뿐만은 아니었는지
그 점에 대해서는 구극장판 첫번째 편인'DEATH & REBIRTH' 에서
속시원하게 밝혀준 바 있었습니다.
'傲慢(오만하고)'
'変わりモン(괴짜인데다)'
'わがまま(제멋대로고)'
'見栄っ張り(허영심 덩어리에)'
'冷淡(그 주제에 매사에 냉담하며)'
'二重人格(이중인격자이고)'
'バウムクーヘン(표리부동한데다)'
'薄情モン(박정하기까지 함)'
'自意識過剰(자의식 과잉으로 똘똘 뭉친)'
'イケスカン女(재수없는 계집애)'
'いやん~な感じ!(왕재수 그 자체!)'
┐-;;
...시원하달까, 뭐랄까...
이거 극장판에나온 대사 그대로 옮긴 건데 말이죠.
...제작팀, 당신들도 저렇게 생각한 건가요,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런 싫은 타입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스카는 에바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째서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두번째 극장판인 'The End of EVANGELION' 에서 찾고자 합니다.
사실, 그녀가 좋아진 건 저도 그 때부터였거든요.

TV판 막바지인 22화에서
아스카는 아라엘의 정신 공격을 받고,
억지로 마음 속 깊숙히 묻어두었던 스스로의 어둠과 대면합니다.
그 결과,프라이드와 함께 자아마저 붕괴되어,
더 이상 에바에 타지 못하게 됩니다.
'シンクロ率ゼロ...(싱크로율 제로...)'
'セカンドチルドレンたる資格なし...(세컨드 칠드런으로서의 자격 없음...)'
이 때까지만 해도, 그저 안타깝다라는 느낌 정도만을 가지고
아스카라는 캐릭터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 잘난 맛에 잘 나가던 인간이 스스로의 덫에 빠져들고 만 거라고.
어린시절, 자신을 죽이고 죽으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반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의 열망으로 인해 스스로의 영혼까지 갉아먹고 만 어머니에게
사실은 하고 싶었던 말.
그러나 전할 수 없었던 말.
'엄마, 나를 봐 줘.'
자기 스스로 나는 어른이다, 라고 칭하며
모든 일에 앞장서서 자신의 능력을 피력하며 혼자서 살아가려고 했던
아스카의 이면에는 어린시절에 보상받지 못한 애정에의 갈증이 그대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엄마라는 절대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해 줄 단 한 명의 존재를 원하면서도
그것이 충족되지 않아,
세상에 대해 연약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두뇌와 능력을 적극 이용하여 점점 타인과의 관계에 담을 쌓아갑니다.
'엄마'조차도 봐주지 않은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를
'타인'이 보아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뒤로 물러서서 그저 홀로 살아가기에
인간은 너무나 약하고, 또 외로운 존재이기에
아스카는 비뚤어진 과시욕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도 아라엘의 정신 탐색으로 인해 산산이 부숴져버렸고,
더럽혀진 마음을 안고 아스카는 자멸해갑니다.
에바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어버린 거죠.
하지만, 두번째 극장판'The End of EVANGELION'을보면서,
새삼 아스카라는 인간의 매력을 접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스카의 부활의 원인은, 다름 아닌 '깨달음' 입니다.
캡쳐와 함께 되짚어 보겠습니다.
싱크로율 제로에 처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해왔던 2호기를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된 아스카.
미사토의 명령에 의해 억지로 병원에서 끌려나와 에바에 타지만,
그녀 안의 괴로움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였습니다.
'死ぬのはいや...(죽는 건 싫어...)'
지겨울 정도로 되새깁니다.
사도에 의해 파헤쳐진 어린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본능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에 입각해서.
그리고 차디찬 호수 아래에서,
아스카는 어떤 목소리를 듣습니다.
'生きていなさい.(살아있으렴.)'
그리고 아스카는, 잠시 어린시절로 돌아갑니다.
'ママ、ここにいたのね.(엄마, 여기에 있었구나.)'
성숙하지 못한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듯,
자신의 어머니가 목매달고 자살한 그 시절로 돌아간 아스카.
쭉 아스카의 뇌리를 지배해 왔던,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두 팔을 벌려 내미는'엄마'
아스카가 진심을 다해 바랐던, 단 하나의 존재.
빛 속에서, 희고 부드러운 손이 나와
어린 아스카의 손을 살며시 쥡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스카는 14세로 돌아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힘껏 외칩니다.
'ママ!(엄마!)'
[플레이 버튼을 클릭하세요]
호수 밑바닥에서부터 뿜어져 올라온,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십자의 빛.
그것은,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의 부활에의 신호였습니다.
'ママ,ママ!(엄마, 엄마!)'
'分かったわ!((나 이제야 알았어요!)'
'A.Tフィ―ルドの意味!(A,T 필드의 의미를!)'
'私を守ってくれてる!(나를 지켜주고 있어!)'
'私を見てくれてる!(나를 지켜봐주고 있어!)'
'ずっと,ずっと一緒だったのね!ママ!
(지금까지 쭉, 함께였던 거죠! 엄마!)
표정이 참으로 천진난만합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전투의 장 앞에 서서
난데없이 A.T 필드의 의미를 알았다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자신의 어머니의 존재를
제멋대로 부각시켜 재인식합니다.
그야말로 리버스.
아스카의 재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벌어지는 전투씬도 그야말로 볼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몇분간의 씬에서, 아스카가 비춰진 컷과 대사들은
그야말로 단 1 프레임, 단 한 컷도 버릴 것이 없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완벽하게 타이밍과 구도가 계산되어 배치되었다는 느낌입니다.
'アンビリカルケーブルが無くたって(언비리컬 케이블이 없어도)'
'こちとらには一万二千枚の特殊装甲と(이쪽에는 일만 이천장의 특수 장갑과)'
'A.Tフィ―ルドがあるんだからー!(A.T 필드가 있으니까-!)'
'負けてらんないのよ!(지고 앉아있을 수는 없다고!)'
'あんた達に!(너희들 따위에게!)'
그 뒤의 전투는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다시피 파죽지세.
그야말로 보는 사람이 시원해질 듯한 압도적인 강함으로
아스카는 적들을 무찌릅니다.
한편 저는 이 씬을 들어,아스카라는 인간에게 링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씬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아스카는 제게 타인이었습니다.
물론, 2차원의 캐릭터가 타인인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씬이 없었더라면 그 캐릭터가
결코 제 마음 속에 뛰쳐들어올 일도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씬을 보면서, 당시로서는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링크된 부분이 있었기 떄문인지, 저는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보면서,
에반게리온이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정말로 감탄을 금치 못했던 몇 가지 씬이 이외에도 있었지만,
저는 지금도 이 씬을 가장 좋아합니다.
처음 볼 당시의 감상은 이랬습니다.
'뭐야, 유치하게.'
사실 유치하긴 하죠.
지금까지 그 생쇼를 다 한 게 결국은 어리광이고, 투정일 뿐이었다고 하는 셈이 되니까.
게다가 하필 찾는 건 엄마.
죽은 사람 찾아서 뭐하냐.
너 이거 상당히 고난이도의 자위다?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도
어째선지 눈물은 글썽해져 왔더랩니다.
유치하다고 탓하면서도
뭐라 말도 못하게 아스카가 사랑스러워지고, 또 좋아진 씬이었죠.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일단, 유치함의 이유부터 밝히자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애니메이션을 볼 때 당시에
저와 아스카의 나이는 그렇게 차이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나름의 생각으로서, 엄마를 찾는 아스카의 행태가
몹시도 유치하다고 치부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스카의 저 유치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14살인걸요.
제가 저 나이일 때에도 분명 슬쩍 거부했겠지만-
어린애인걸요.
그리고, 사실 유치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저 모습이야말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절대적인 것을 원합니다.
변치않는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지간해서는 찾기 힘듭니다.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애당초절대적이고 변치않는 무언가를 원하는 것 자체가
인간,자신 스스로가 변하기도 하며, 절대적이지도 않다는 걸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변치않고 자신을 지켜 줄 사람.
누군가, 절대적으로 자신을 지켜봐 줄 사람.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지켜봐주며
언제나 변함없이 미소를 보내주고, 안도시켜주며, 중심을 잡아 줄 사람.
항상 웃으면서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네 편이야.' 라고 말해 줄 사람.
인간,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런 존재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스카의 경우는 그것이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은 엄마였던 것이고,
지금까지 쭉 함께 해 왔던 A.T 필드를그 블랭크(공란)에삽입함으로서
무너졌던 자신을 다시 독려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 것이겠지요.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으므로 질 수 없다,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사실, 인간이란 이렇게 단순한 것인데도.
그렇기에, 위에 장절하게 적은대로
아스카가 그렇게나 대놓고 재수없는 계집애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겠죠.
발버둥치는 모습이, 사랑스러우니까.
그리고 나 또한, 절대적인 A.T 필드를 갖고 싶으니까.
나 자신을 지탱하고 싶으니까.
웃으면서 살아가고 싶으니까.
근 12년간, 에반게리온보다 새로운 애니메이션은 없었다는
안노 감독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말 그대로,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은 분명 새롭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다지 참신한 시나리오는 아닙니다.
깊숙히, 그리고 철저하게 궁리된 인간의 내면이
시중의 그 어떤 애니메이션보다도더 잘 까발려져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 에바 제작팀에게는 정말이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말 길어졌군요.
이 포스팅은 언젠가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분명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아껴두고 있었던 녀석인데.
허허.
정말 요 근래에만 극장판 두 편을 다섯 번씩은 더 돌려본 것 같습니다.
5만 달러라는 금액에 에바 국내 개봉에의 희망은 옅어져만 가는데
그와 반비례하게 암담한 애정은 식질 않은 채로.
...괴롭습니다...
미처 잡지 못한 미련 한 조각이 LCL의 바다 위에서 영원히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달까.
이쯤 해두겠습니다.
아픈 마음은 임시방편적으로 도시전설(NDS)로나 달래렵니다.
날 밝았군요.
즐거운 아침 맞으시기를.
쟈하라독시드.
덥.
시청자의 내부에 링크된 애정의 결과...
모처럼 부활한 미소녀가 히로인 사상 최악의 흉상으로 일그러져가도
사랑이 식질 않는 겁니다.
도리어 뒤에서 파이팅을 외치게 된달까?
'죽여, 죽여버렷!' 이라고.
아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