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하게 그것을 깨달은 주말.
쌀내미- 엊그제의 포스팅에 적었던 대로
토, 일요일에 걸쳐 강남에 위치한 피시방으로 알바 다녀왔었더랩니다.
음, 생각해보니 알바 안 한 지 참 오래되었구나 싶었어요.
한의원 일은 일이었고- 그거 생각하면 근 2년간은 알바를 하지 않은 듯.
막상 시작은 중학생 시절부터였음에도.
마냥 노는 게 너무 입맛에 맞았던 탓이죠.
여하간 이놈, 오늘 채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정말로 인생은 새옹지마로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더랩니다.
강남 매봉역 근교에 위치한 모 PC방.
PC방이면서도 꽤나 높은 시급을 선보여
쌀내미를 현혹시켰지요.
엊그제 금요일에 교육을 가서 3시간 일해보고
어제와 오늘 저녁과 오전에 일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박차고 나왔습니다. 뭐랄까, 제가 인생을 편하게 산 탓인지-여하간 지금까지 일하는데선 다들 사이좋게 잘 지냈더랩니다.섭하게 구는 사람들이야 어딜가도 있긴 했지만여하간 정작 중요한 건 모두 챙겨주는 고마운 분들뿐이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일은 힘들지만-(말이 피시방이지 인터넷 카페랄까;여하간 앉아있을 수 없고, 컴퓨터는 닦기 위해서가 아닌 이상일체 손 못 대는 종류의 일이었습니다.)뭐- 시급도 높고 하니 잘 해보자,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제는 그럭저럭 첫날 넘어가고-오늘은 오전에 좀 나와달라고 부탁을 받아제딴에는 졸린 눈 비벼가며 나갔던 겁니다. 뭐, 사실 별 일은 없었어요....랄까, 저리 호들갑 떨 만한 일은 아니었어요.하지만 좁쌀내미는 제 기준에서 안 맞는 일을 알바로 하고 싶은 마음 제로였기에그대로 때려치워 버렸던 것. 어제는 매니져님과 또 다른 알바생과 일했는데-시간대가 바뀐지라 오늘은 사모님과 둘이서 일한 것.사모님은 일고 여덟살 쯤 되어보이는 따님과 함께저보다 조금 늦게 출근하셔서 같이 일을 한 겁니다. 도착해서 한참 일하다가 조금 빠졌을 때,사모님- 따님을 불러다가 같이 식사를 하십니다.저야 아침을 먹고 나갔으니 밥 생각은 없었지만- 뻔히 옆에서 먹고 있는데 어째아침 먹었냐 소리 한 마디 안 물어봐 주시는 게 조금 섭했더랩니다.그런가 부다.다른 알바생들도 알아서 챙겨먹고 오니까 그러려니 하셨나부지, 라고생각하고 만 쌀내미. 그리고 두어 시간 후-그 따님이 사모님에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칭얼칭얼.잠시 카운터를 보라시더니 밖으로 나가시는 사모님.그리고 곧 돌아온 손에는 사모님 거 따님 거 아이스크림 두 개.
두 개. 미묘한 겁니다.미리 물어보고 제가 생각 없다 한 게 아닌 이상은같이 일하는 사람- 오백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챙겨주는게 그리 힘든건가.순간적으로 팍, 하고 섭해졌지요.하지만- 자기 돈으로 자기가 사먹는다는데 어째.내가 하는 짓이 안 예쁜가보지 뭐어.결국 단순한 놈 또 심플하게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시계는 또 파도를 타고 흘러흘러-오후 시간대가 되자 배가 고파진 쌀내미.슬쩍 사모님께 말씀드려 봅니다. "사모님, 배고픈데요..." 눈을 동그랗게 뜨시더니 사모님 가로되- "도시락 안 싸왔어? 우리 시급에 식대 포함이야.밥은 알아서 싸와서 챙겨먹는건데."
꺄울. 매니져님, 설명 안 해주셨어요.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어쩐지 토요일 저녁시간에도 밥 이야기가 없더라니. 하긴 시급이 높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했는데그건 그거고-일단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지라 저는 당장 배는 고프고, 당연히 도시락 부재고. "저어, 오늘은 몰라서..." 설마 당장 배고프다는데 뻔히 앞에 파는 물건이라곤 해도먹을 거 잔뜩 쌓아두고 나몰라라 하진 않겠지.나름 온건하게 말하고 반응을 기다립니다-만.토스 대신 날아든 건 스파이크. "다음부턴 준비해 와. 우리 알바생들 다 그렇게 해." "아, 네..."
...잠깐만요, 사모님.하실 말씀은 정녕 그뿐?┐- 그리고 묵묵부답.분명 '배고프다' 라고 했고, '오늘 싸온 게 없다' 라고 했는데어째서 내게 일을 시키는 고용주가 아무 말이 없는 건지.자신들이 말 깜빡잊고 안 전해줘서 내가 준비 못 해온 것이내 잘못이니 알아서 하라? 그리고 잠시 손님이 빠져서 그대로 한 십오분 흐르고-아무래도 허기짐이 심해져서 못참겠다 싶어진 제가 먼저사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파는 컵라면 제가 하나 사먹고다음부터는 준비할게요." 그런데 사모님.정말로 이게 우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서도-아까까지 표정 내내 무심한 표정 일관이시던 분이처음으로 저를 보고 슬쩍 웃어 보이십니다. "그럴래?"
가히 눈물젖은 라면이랄까.
거기다 더 열불나는 건 옆에서 그 따님이
입 심심하다며 파는 물건 중에 김치만두인가를 먹고 싶다고 하니까
즉석에서 데워주더란 것.
자기 자식 귀한 거야 당연한 거지만-
천원도 안 하는 컵라면 하나를 제 밑에서 부리는 사람 하나 못 줘서굶기려던 사람이연속동작으로 할 짓은 아니었던 듯. 사소한 거에서 이렇게 섭섭하게 구는 사람 밑에서일 못 하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이거 자체는 별 것 아니지만-앞으로도 이런 일들 비일비재한 이상한 나라의 쌀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 짧은 식사 후에 화장실로 간 쌀내미.실은 토요일에 이전에 집 근처 호프집에서 알바 신청해놨던데서연락이 왔었는데-이쪽에서 이미 일을 시작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연락해줘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던 차.곧장 그쪽으로 전화합니다. "...아직도 사람 구하세요?" "이따 나오실래요?" 피시방 알바는 7시까지였기에 9시에 그쪽에 가서 보기로 하고-
이쪽 알바 포기.
그렇다곤 해도 막무가내로 그 자리에서 나갈 수는 없으니
일단 지정 시간까지는 열심히 일하기.
6시가 되어서 다른 알바가 오자마자 됐다고 이만 가보라고 하는 사모님.
분명 오늘은 8시간 일하기로 하고, 오전 10시에 나와서 7시에 돌아가라고
어제 매니져님께 두 번을 확인한 터인데-
베테랑 알바생이 왔으니까 가랩니다.
...아아, 이제 정말 못 돌이켜- 라는 느낌만 가슴 가득.
옷 갈아입으려니 화장실 청소하라기에
어제 배운 대로 휴지통 비우고 세면대 닦고 나왔더니
바닥을 락스 뿌리고 솔로 밀어서 대걸레로 물을 훔치라십니다.
허허.
6시 퇴근인데 청소 끝나고 나와보니 6시 반.
슬슬 막 인생이 서러워지려고 하는 것.일이 힘들더라도 곰플 속에서 즐겁게 일하자고스스로 다짐했던 것 이틀만에 리셋. 옷 갈아입고 나와서 '오늘까지만 일하는 것으로 해주십시오.' 라고 했더니왜 그라냐시기에 완곡하게 돌려서'제가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아서 마음에 안 차시는 성 싶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일이야 하다보면 느는거다- 라고 맞는 말씀을 잠깐 하시는데-그럼 오늘 하루 종일 뭔가 실수할 뻔 했을 때마다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보신 건 대체 뭐란 말입니까.'처음이니까 괜찮아, 익숙해지면 잘할거야.' 소리 한 마디가20캐럿짜리 다이아몬드입니까? 여하간 그랬더니 급여를 못 주시겠답니다.얼씨구. 슬슬 제대로 스팀 오르는 쌀내미.교육 기간 없이 일한 것도 아니고-차비 들여서 여기까지 당신들이 와 달라고 부탁한 시간에 와서이틀이나마 '그쪽에서 고용되어서' 일한건데급여를 못 주겠다니. 이유는 '내 쪽에서 멋대로 그만두는 것이기 때문에.'...웃고 말았습니다.왜 웃냐시더군요. "...저는 어제와 오늘, 분명히 '나와달라' 고 해서 나와 일했습니다.그리고 하루 이틀만에 그만둔다고 해서 급여를 주지 않을 생각이셨다면그건 처음에 말씀을 해주셨어야지요.저는 일을 했고, 그건 급여를 받을 이유가 됩니다.그리고 제가 그만두는 게 제 쪽에서 멋대로라고 하셨는데사람 섭하게 하는 곳에서 누가 좋아서 알바를 하려 듭니까?저한테 '배고프지, 라면이라도 먹을래.' 소리 한 마디 하는 게 그리 힘드셨습니까?(라면에 금가루 처발랐냔 소린 차마 뺐습니다;)막말로 제가 먼저 라면 먹겠단 소리 안 했으면 저 오늘이대로 일하다가 한 끼 굶고 주린 배 쥐고 집으로 돌아갔을 거 아닙니까?제가 일 힘들어서 나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 사모님 아래서일할 생각이 들지 않아서 나가는겁니다." ...숨은 쉬었습니다; 알바 초기라고 말도 잘 안하고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소리밖에 안 했던지라갑자기 말을 쏟아낸 것에 대해 당황하신 모양.그래도 금방 표정을 고치고는 말씀하십니다. "아니, 다른 알바생들을 알아서 챙겨먹으니까-내가 어떻게 그걸 일일히 챙겨주니?" ...이 사람, 이해 못 하고 있다.┐- 여하간 이후로도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급여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야기했더니공책 내밀면서 계좌번호 적으라시더군요.정확히 한 달 후에 돈 들어갈거라고.그리고 투덜투덜. "내가 어디서 이런 경우를 또 볼까.어이없어, 어이없어...너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그만둔데서 다 일당 쳐 줬니?" "사장님이나 사모님하고 하루 일해보고 그만 두는 곳은 처음이라,죄송하지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젠 대놓고 눈 홀기기.쌀내미는 마냥 심드렁한 표정.오전에 사모님이 내내 짓고 계시던 표정 반사. "정말 어이없고 기가 막혀서 내가 원..." 마지막에 한 마디 그러시겠죠, 하고 덧붙이긴 했는데아마 안 들렸을 겁니다.이런 식으로 고용주 앞에서 대놓고 뻐팅기고 나오긴저도 난생 처음이로군요. 껄. 여하간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와서-집 근처 호프집으로 곧바로 직행.가서 보니까 사장님 말씀이- "다 좋은데 걸어다니기엔 버스 세 정거장이면 좀 멀지 않아요?여자니까, 아무래도 새벽 시간엔 걱정되서-내가 그래서 시키기가 꺼려지는건데-밤에 다니면 이 동네, 위험해요." 일하는 시간이 오후 8시 - 새벽 3시 타임인지라. "괜찮습니다, 일하게 해주세요." "아니, 정말로 위험해서-그럼...나랑 약속 하나 해요.내가 장사 좀 되는 날은 택시비 챙겨줄테니까 택시 타고 집에 가고-그게 아니더라도 걸어서 집에 가겠단 소린 말아요.매번 택시를 타는 게 부담되는 건 알지만 위험하게 보낼 수는 없잖아요." 헉.이 사장님-
후광 비쳤습니다. 저도 오늘 하루 통쾌하다고 하면서도 나름 텐션이 쳐졌었던 모양.그 뭉클한 배려에 갑자기 가슴 녹아내리는 쌀내미. "열심히 할 테니 시켜주세요." "그럼, 마침 펑크난 참이니- 지금부터 해볼래요?" ...암묵.소설 동인지 빌렸던 거 돌려주러 갈 약속이 이어서 있었던지라손에 든 쇼핑백엔 소설과 만화책 가득.하지만 왠지 이 사장님의 미소가 Follow Me 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아서-쌀내미 외쳐버린 겁니다. "네!!"
약속 예정의 L 언니에게는 전화해서 사과하고그대로 일 스타트.근데 이쪽도 나름 고되다면 고된 것이- 알바생으로 뽑힌지 한 시간만에 이례적으로 가게를 맡고 말았지요. ...사장님, 가지마세요... 자리에 계시질 않아요.두 시간 째에는 아예 폰 번호를 적어주고 나가시는 사태 발생....자, 장사는?(그런데도 되긴 된다...) 제일 간단한 메뉴이긴 하지만 사장님 안 계신 사이에안주까지 직접 셋팅해서 하나 나가보고.우와.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피시방에서 하도 질려버린데다그 소박한 배려에 아주 녹아버린 쌀내미.뭣보다, 사실 다음 주에 가서 봐도 똑같이 느낄지 장담할 순 없지만- 호프집 사장님 외형이 말이죠.
아상 분위기가 납니다.(........)저, 좀 오래 일할지도. 처음에 얼굴만 보고는 가게 주인인 줄 몰랐었습니다.이십대 후반으로 보였으니까.그런데 이야기 중반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마누라' 와기타 등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니-이 분, 최소 서른 셋 이상인 겁니다.(생각해보면 호프집 사장님이니 당연한 것을...) 통통한 듯 아담한 체형이라던가서글서글하고 소박한 얼굴이라던가제대로 동안이라던가-도촬할랬더니 또 쌀내미의 폰카가 잠들었다는 우연의 일치라던가.(아직도 아상 사진 하나 못 찍어온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아...┐-) 공연히 아상이 떠올라버렸어요.덕부에 오늘 황홀.일거리도 별로 없어서 스포츠 관심 제로지만박지성씨가 합류한 축구팀이 이겼다는 TV 중계를 볼 정도로. 게다가 비 온다고 택시비까지 챙겨주셨지요.다음주에 보자면서, 쇼핑백 있으니까 우산 큰 거 쓰고 가라고제일 큰 파라솔 우산 챙겨주시고. 돌아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더랩니다.지금 글로 풀어보니 더욱 그렇군요.정말로 인간만사 새옹지마. 36시간 전에는 피시방 첫 출근으로 두근거리고 있었고-24시간 전에는 세익스피어 리뷰를 눈 비벼가며 하고 있다가12시간 전에는 피시방 그만둘까 말까 잠시 고민.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주말 알바 자리를 얻었군요. 정말이지 알 수 없이 흘러가는 인생만사.껄껄. 오늘은 푸념으로 좀 길어졌습니다....라곤 해도, 결말은 신명나는 해피엔드로군요.후훗. 여하간 전화위복이니 인간만사 새옹지마니 운명의 수레바퀴니 하는 게조금 강하게 느껴진 주말이었습니다.여러분은 어떤 시간 보내셨는지요. 슬슬 또 눈 가물거립니다.내일도 학교에 가려면 이만 퍼 자야....랄까, 분명 이 놈 내일 첫차 타고 간다고 헛소리를 무지막지하게 했던 것 같은데.┐- (Y군, 혹여 나 늦게 가도 이해해 줘.오늘 오전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두 군데 경유해가며 논스톱으로 일한지라지금 허리와 무릎이 무너질 것 같단 말야;) 그럼, 밝아오는 이번 한 주도즐거운 매지컬되시기를!쟈하라독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