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연극 리뷰

프랑켄슈타인 리뷰 3rd(final) / 씬 29~30

찹쌀공룡 2011. 5. 17. 07:00



프랑켄슈타인 전체 리뷰 라스트입니다.

(대본에서와의 대사 순서가 크게 바뀐 부분이 있습니다.
제 하찮은 기억에 의존한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

 

 

 

씬 29/

무대가 회전한다.
원래 오두막이 있던 자리의 뒤편에 마련된 프랑켄슈타인의 집이 나타난다.
정확히는, 하나의 방이다.
방은 원형 회전 무대의 공간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벽에는 테라스의 창문이 여럿 있다.
왼편에는 침대가 놓여 있고, 등장인물들은 오른쪽에서 문을 열고 무대 뒤쪽에서부터 등장한다.

첫 장면은, 하인들과 엘리자베스가 술잔을 들고 결혼축가 노래를 부르며
엘리자베스의 방(혹은 앞으로 빅터와 엘리자베스의 침실이 될 방) 앞으로
들어오는 장면까지다.

'서약은 이루어졌고
매듭은 단단히 묶였네
화환은 신랑과 신부에게로
던져졌네

목소리를 드높여라
손에 든 잔을 들어라
그리고 축복하라,
프랑켄슈타인 가(家)를!'
(실제로 무대 위에서는 더 가사가 길었으나
제 막귀로는 대본의 힘을 빈 이것이 최종본 ㅠㅠ)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로, 흥겹다.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메이드 클라리스가 방으로 들어오고,
뒤에서 노래부르는 하인들을 무시하고
클라리스는 엘리자베스와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쾅 닫아버린다.
문 뒤편에 남겨진 하인들을 무시하는 그 동작에 관객들은 웃는다.

두 여자는, 신혼 첫날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 가운데서, 프랑켄슈타인이 아직 한번도 엘리자베스와 동침한 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키스는 고사하고 이야기조차 제대로 나누지 않는 약혼자가,
엘리자베스에게 혼전에 열렬한 구애를 했을 턱이 없기는 하다.
(또한 그 시대에 따른 도덕관 역시 처녀의 혼전 순결을 중시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빅터에게 아름다워보이고 싶다면서
클라리스에게 자신을 잘 꾸며달라고 하고,
클라리스는 신혼 첫날밤의 차림새로 그녀를 꾸며주면서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둘이 기도를 하고, 클라리스가 방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경비를 도는 하인들과 빅터가
속옷 바람이나 진배없는 엘리자베스의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온다.
엘리자베스는 깜짝 놀라 두 팔로 상체를 감싸면서 '빅터!'라고 부르지만
빅터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하인들에게 보고를 요구한다.
테라스와 지붕에는 아무도 없으며, 호수 쪽에도 사람을 내려보냈다는 보고다.
놀란 엘리자베스는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여기에 경비를 세워뒀어. 문이라는 문 옆에 모두 경비를 붙여뒀지.'
엘리자베스는 신혼 첫날밤을 앞두고 너무나 뜬금없는 빅터의 행동에 설명을 요구한다.
'왜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말해줘요.'
그리고 빅터는 그제야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나는 진즉에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했어야 했어.'
엘리자베스가 동의하자, 빅터는 크리쳐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내 실험 가운데 하나였어, 엘리자베스.
당신은 이걸 믿기 힘들거야, 그리고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하지만 단순한 사실은- 나는 인간을 하나 만들었어.'

물론 엘리자베스는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빅터는 다시 반복한다.
'내가 한 사람을 만들었다고.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에 성공했어.'
'뭐라고요?'
'내가 남자를 만들었다고!'
'생명을 불어넣어요? 당신 말인즉슨, 당신이 한 남자를 생명을 주었다는 건가요?'
'그래, 그를 내가 살려냈어! 내 창조물, 내가 그에게 삶을 주었어!'

빅터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짜증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위대한 과업에 대해서, 이 여자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업신여김이
슬쩍 엿보이기도 하는 옹졸한 짜증이다.
'당신의 창조물.'
엘리자베스는 그저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빅터는 그 말투에서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챈다.

'믿지 않는군.'
'아뇨. 아뇨, 믿어요. 당신이 창조물을 만들어내고 그에게 삶을 주었다고 말한다면,
그럼- 나는 믿겠어요. 물론.'
그렇게 말하곤 그녀는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지 못한 듯, 웃음을 터뜨린다.
'그게 뭔데요? 강아지 같은 거예요?'

빅터는 버럭 화를 낸다.
'아니, 기능하는 인간- 인간이란 짐승을 만들었단 말이야!'
엘리자베스는 침착하게 그 말을 받는다.
'이건 너무 터무니없어요. 당신이 일종의 창조물을 만들었다고요?
그래, 그게 뭘 어쨌다는 거죠?'
''그것'이 날 좇아와.'

거기까지 말을 들은 엘리자베스, 아무래도 빅터를 다독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빅터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화를 진행시키려고 한다.
'빅터, 다신은 지금 아주 아파요. 스코틀랜드에서 당신은 끔찍한 일을 겪었어요.'
물론 끔찍한 일이긴 했다.
다만, 그건 타인에 의해 휘말린 사고따위가 아니라 빅터 스스로가 완전히 주도한 끔찍함이었을 뿐이다.
엘리자베스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이것 봐. 여기에- 밖에- '그것'이 있어. 그리고 '그것'은 나를 파괴하고 싶어해!
나는 그것을 여기로 불러들였고, 이제 반드시- 그것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그것을 죽여야 해!'
그 말에 엘리자베스가 반색을 하며 묻는다.
'무슨 말이죠? 여기로 불러들이다뇨?'
'나는 그가 여기로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내- 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빅터. 엘리자베스가 그 뒷말을 잇는다.
'결혼식이요?'
바로 직전 씬에서, 빅터가 뜬금없이 아버지를 붙들고 결혼하겠다고 하는가 싶더니
바로 결혼식을 미끼로 썼다는 걸 여기서 알 수 있다.

'그 사람을 초대했다는 건가요? 빅터! 손님 리스트에 없었잖아요!'
아직도 사태파악을 잘 못하고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빅터는 다시 소리를 버럭 지른다.
'엘리자베스! 난 심각해! 부탁이니 나를 좀 믿어줘!'
'당신이 일종의 몬스터를 만들었다는 걸 나한테 믿어달라고요?'
'그래, 나는-'

빅터는 갑갑해서 거의 내내 소리만 지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자베스는 빅터에게 생각도 못한 것을 묻는다.
'왜요?'

'뭐라고?'
'왜, 왜 그러셨는데요?'
'그야 내게 완벽에 대한 꿈이 있었으니까.
나는 자연을 따라 그녀의 은신처로 살며시 따라가, 그녀의 비밀을 벗겨냈어.
나는 이 어두컴컴한 세상에 빛의 급류를 가져왔다고.
내가 했어, 엘리자베스, 바로 내가!'
엘리자베스는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빅터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다.

'당신의 천재성을 의심한 적은 없었어요.'
'내가 죽음을 눌렀어! 내가 해냈다고! 내가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들어냈어!'
'하지만, 당신이 생명체를 만들길 원했다면-'
'그래, 바로 그거야! 그게 바로 정확히 내가 원했던 거야!'
빅터는 이제야 말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왜 제게 아이를 주지 않으셨죠? 우린 더 일찍 결혼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엘리자베스는 침대를 가리킨다.
빅터는 도리질을 한다.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라-'

'이게 일반적으로 생명을 만드는 방법이잖아요, 빅터!'
'나는 과학 이야기를 하는 거야.'
엘리자베스와 빅터의 대화는 여기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두 사람의 사고방식 차이 때문이다.

'아니, 당신은 자존심 이야길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신께서 하시는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말했죠?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요!'

'당신 안에서 나는 낙원을 찾아냈어. 하지만, 우린 이미 선악과를 맛보아버렸지.
되돌아갈 수는 없어.'
'당신은 자연의 섭리에 간섭해서 우리를 혼돈 속으로 이끌었어요.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거죠?'

엘리자베스는 교육을 받지 못해 언뜻 어리석은 듯 보이지만,
당시의 신앙심 깊고, 과학에 무지한 일반인을 대변하는 캐릭터와도 같다.
빅터가, 이 시대상에 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빅터는 그 말을 듣고 권총을 고쳐들고 말한다.
'집 근처에 모두 경비를 세워뒀어. 난 내가 만든 이 괴물을 죽일 거야.
그리고 나서 돌아올게.'

엘리자베스는 뭔가 예감하기라도 한 듯 빅터를 잡는다.
'제발, 가지 마세요! 제 곁에 계셔주세요! 제발!'
물론, 여기서 말을 잘 들으면 빅터가 아니다.

'가봐야겠어. 엘리자베스,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게.'
'빅터!'
참 대사 하나하나가 찰지게 얄미운 빅터다.
6년 넘도록 기다려준 지고지순한 여자에게 결혼식날 한다는 말이 저렇다.

빅터가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가버린 뒤,
엘리자베스는 침대 곁에서 객석 쪽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신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급한 걸음으로 문으로 향하는데-
침대 안쪽에 숨어 있었던 크리쳐가 용수철처럼 튕겨져 튀어나와
엘리자베스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붙잡고 입을 막는다.




'비명 지르지 마!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아. 소리 지르지 마, 당신 도움이 필요하다.'
엘리자베스는 덜덜 떨고 있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에 겨우 조금 진정한다.
그러나 돌발적인 스트레스 상황인지라 어깨는 계속 들썩이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짐작이 가?'
엘리자베스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객석 맨 뒤쪽에서 알아보기엔 힘들 정도로 살짝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빅터가 아무 말도 안 해줬겠지, 안 그런가?'
다시 한 번 엘리자베스가 끄덕인다.
'비명 지르지 마. 지금 당신을 놓아주겠어.'

조심스럽게 크리쳐가 엘리자베스를 구속하고 있던 팔을 푼다.
그러나 크리쳐가 놓아준 뒤에도 엘리자베스는 공포에 압도되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뒤로 돌아. 나를 봐.'
엘리자베스는 크리쳐의 그 말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뒤로 돈다.
그리고 정말 무서운 것을 봤다는 듯이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히익'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뜬다.
크리쳐는 그런 엘리자베스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기만 하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요청할 게 있어.'

엘리자베스는 크리쳐에게 이름이 뭔지 묻는다.
그 말에 크리쳐는 기가 막히다는 듯 대답한다.
'내 이름? 내겐 과하다 못해 넘치는 소리로군! 그는 내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어.'

그리고 크리쳐는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라고 한다.
머리카락이 없는 맨머리 위로, 엘리자베스가 조심스레 손을 뻗고
이윽고 맨살 위로 접촉이 이루어진다.
'무엇이 느껴지지, 엘리자베스?'
'온기요.'

그리고 나서는 크리쳐가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아, 자신의 옷깃을 벌리고
왼쪽 가슴에 가져가곤 다시 묻는다.
'그럼, 여기는?'
'심장박동이요.'
'그래, 당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말하며 크리쳐가 엘리자베스의 가슴 위로 손을 얹는다.
엘리자베스는 불편하다는 듯 됐으면 손을 좀 떼달라고 부탁한다.
거기서 평범한 여자와, 남자의 대화가 된 것만 같아서 관객들은 긴장을 풀고 잠시 웃는다.

'요청거리가 있다셨지요?'
'마담, 당신의 남편은 착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않았지.
만약 당신에게 아이가 있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나처럼 생겼다면 당신은 아이를 저버릴 거요?'

그 물음에 엘리자베스는 당치 않다는 듯이 강한 어조로 부정한다.
'전 절대 제 아이를 저버리지 않아요.'
'절대로?'
'결코.'
'얼마나 흉측하게 생겼는지는 상관없이?'
'전혀 상관없어요!'
엘리자베스의 곧고 상냥한 성품이 드러나는 단적인 대화다.

'그러나 당신의 남편은 나를 저버렸지. 그는 나를 버렸어.
왜냐하면 내가 이런 몰골이라서. 왜냐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니까.'
그 말에 엘리자베스는 만약 크리쳐가 빅터에게 이 말을 하고 싶은 거라면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크리쳐는 빅터가 침실로 오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에 대답은 않고, 빅터가 자기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다시 한 번, 크리쳐는 빅터가 첫날밤인데 엘리자베스에게 욕망하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엘리자베스는 불리한 사람 편에 마땅히 서야 한다는 말만 한다.
그리고 크리쳐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에 크리쳐가 대답하기를-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 하지만 일단 태어났으니 살아가기 위해 싸워야지.
모든 삶을 소중해- 이런 나의 삶이라 해도!
그는 딱 하나, 내가 필요로 하는 것, 내가 결여된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어겼어.
나느 친구를 원해! 그게 전부요.'

그러자 엘리자베스, 조금 전보다 조금 더 표정이 풀어지며 크리쳐 쪽을 본다.
'내가 당신의 친구가 될게요. 당신이 허락해준다면.'
그러자 크리쳐는 약간 놀랍다는 듯이 엘리자베스를 보며 되묻는다.
'정말 그래줄 거요?'
엘리자베스는 진심이다.
'당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어디 우리가 뭘 할 수 있나 한 번 보죠.'

그러자 크리쳐는 자기가 뛰쳐나오면서 흐트러진 침대의 이불을 어설픈 동작으로 정리하며 말한다.
'나와 함께 앉아. 나는 당신을 해하지 않을 거야, 약속해. 나는 교육을 받았어!'
그 말에 다시 관객이 웃는다. 크리쳐가 나름 필사적인 것이 보여서일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잠시 크리쳐를 응시하다가, 이윽고 침대로 다가가 크리쳐 곁에 앉는다.

'놀라워요. 당신은 정말로 대단해요. 알고 있어요?'
이제 엘리자베스는 모든 경계심을 다 푼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내가?'
'그래요, 당신.'

확실히 크리쳐의 존재 자체는 기적이다.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말에 크리쳐가 '아마도 나 또한 천재라서 그렇겠지?' 라고 대답하자
다시 객석에서는 와르르 웃음이 터진다.
엘리자베스는 살며시 미소를 더하며 '아마 그럴거예요. 그럼, 당신은 뭘 잘하시죠?' 라면서
대화를 이끌어나가려고 한다.

'나는 융화의 예술에 능해. 나는 보고, 듣고, 배웠지.
처음에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하지만 인간들의 방식을 나는 공부했지. 천천히 익혔어.
어떻게 파멸하는지, 어떻게 증오하는지, 어떻게 천박해지는지, 어떻게 굴욕감을 주는지.
그리고 나의 마스터의 발 아래서, 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인간들의 기술을 배웠지.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없는 기술- 나는 마침내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익혔어.'

그 말에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말의 내용이 아무래도 점차로 위험해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짓말?'

크리쳐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간다.
엘리자베스가 뛰쳐나갈 것을 예상하고,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미리 도주로를 막아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밤에 나는 누군가를 만났지- 완벽해.
나를 이해하려고 해 줘서 고맙소. 하지만 그는 약속을 어겼어.
그러니 나 또한 내 약속을 어길 거요. 진심으로 미안해, 엘리자베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죠?'
그렇게 말하곤,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엘리자베스.
이미 도주로가 막혔다는 것을 깨닫고 불안하게 두리번거린다.
길은 없다.

그럼에도 있는 힘껏 달려서 일단 크리쳐의 마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엘리자베스.
'빅터!'
비명을 지르며 문으로 달려가보지만, 크리쳐에게 붙잡힌다.
크리쳐는 우악스럽게 그녀를 침대 위로 끌고 간다.
(실제로는 원심력으로 거의 회전해서 사뿐하게 침대 위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싫다고 울부짖으며 거부하는 엘리자베스를 깔아눕힌다.
엘리자베스의 머리는 침대 발치, 즉 객석 쪽으로 향해 있고
크리쳐의 몸은 정면으로 객석을 바라보고 있다.
그 상태에서 크리쳐가 엘리자베스의 가느다란 두 다리를 벌리고,
파고드는 동작을 한다. 엘리자베스의 저항은 미약하지 않지만 효과는 없다.

그리고 크리쳐가 막 엘리자베스에게 삽입한 직후,
빅터가 침실로 뛰쳐들어온다.
'엘리자베스!'
크리쳐가 앞뒤로 몸을 움직인다. 엘리자베스는 더욱이 오열하고,
빅터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엘리자베스의 울부짖음을 듣는다.

곧 크리쳐가 절정을 맞고, 몸을 빼내는 동작을 한다.
엘리자베스는 거의 실신 직전인듯, 크리쳐가 그녀의 머리를 붙잡는데도
거의 저항이 없다.

빠직.
가느다란 뼈가 부러지는 효과음이 소름끼치게 무대 위에 울려퍼지고,
엘리자베스의 목이 크리쳐의 두 손 안에서 돌아간다.
엘리자베스의 몸이 힘없이 그대로 침대 위로 널브러진다. 죽었다.

크리쳐는 엘리자베스의 드러난 두 다리를 긴 치맛자락으로 덮는다.
그리고 빅터 앞으로 간다.
총을 가진 빅터는, 크리쳐를 쏘려고 한다.
'해 봐. 날 쏘라고!'

그러나 빅터는 쏘지 못하고 망설인다.
크리쳐는 그 찰나의 순간, 빅터가 자신을 쏘지 않을 것임을 알아차린다.
죽여주지도 않는 것이다.
곧 사람이 들이닥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빅터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손에 죽을 가능성도 있다.
크리쳐는 그대로 창문을 통해 달아난다.

곧이어 하인들과 클라리스, 무슈 프랑켄이 들어온다.
엘리자베스를 되살려내겠다며 어서 시신을 옮기라는 빅터의 명령에
클라리스는 빅터가 미쳤다고 한다.
그러자 빅터는 도리어 화를 내며,
'난 안 미쳤어! 내겐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힘이 있어!
감히 내가 미쳤다고?!'

남들이 보기에 그런 빅터의 분노는 전혀 정당하지 않다.
정말로, 그저 미치광이일 뿐이다.
무슈 프랑켄슈타인조차도 더는 못 참겠다며 그 광태에 분노한다.

빅터는 그런 주변 사람들 따위 내 알바 아니라는 듯
창가로 다가가 달아난 크리쳐에게 들으라고 외친다.
'너! 뒤를 돌아보면 언제건 내가 있을 거다!!'
진정 크리쳐가 바란대로의 행동양상이다.

보다못한 무슈 프랑켄슈타인은 하인들을 시켜 빅터를 억누르라고 한다.
'대체 뭘 한 게냐? 처음엔 윌리암, 이젠 엘리자베스.
온 사방에 죽음뿐이로구나! 네 정신은 어지럽혀졌다, 그건-'

그러나 빅터는 이런 상황에조차 그 말에 반대한다.
'내 정신은 우수해요!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나다고요!'
무슈 프랑켄슈타인은 빅터를 한 대 치려는 듯이 손을 들지만, 곧 내린다.

빅터와 하인들은 퇴장하고, 클라리스와 무슈 프랑켄슈타인만이 남는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 무슨 짓을 한 건지에 대해 한탄하는 아버지.
클라리스는 당신께선 최선을 다 하셨다고 위로하지만, 무슈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씬 30 - 최종장 /

원형 무대의 뒤쪽, 반달형이 그 아래쪽으로 빠져있어 시커먼 균열이 보인다.
지금까지중에 가장 가짓수가 많은 옷가지를 걸친 크리쳐가 천천히 무대 위로 등장한다.
살을 에일듯한 찬 바람소리가 관객들의 귀에도 들려온다.
뭉게뭉게 무대 위로 깔리는 연기는 닿기만 해도 시릴 것처럼 느껴진다.
그보다 한층 더 냉랭한 목소리로, 크리쳐가 입을 연다.



'나의 마음은 암흑처럼 깜깜하고, 악취가 풍긴다.
내 정신은 한때 아름다움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복수가 들끓고 있는 용광로일 뿐!
3년 전에 태어났을 때, 나는 햇볕을 즐기며 웃었고 새들의 지저귐에 울었다.
세상은 그저 내게 풍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과 서리로 가득찬 쓰레기로구나.'

그렇게 말하곤 크리쳐는 바닥에 등에 맨 자루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있던 접시와 술병, 와인잔과 고기를 꺼내어 가지런히 놓는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주인은 노예가 된다.
나는 타타르와 러시아를 지나, 흑해를 가로질러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나는 그를 이 얼음판 위로 불러들였다.
우리니 북으로 향했다. 언제나 북쪽으로.
그의 개들은 죽었고 그는 모든 생필품들을 다 소진했다.
하지만 우리 둘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계약을 맺었지.
그는 살아있는 한 나를 파괴해야만 하고, 나는 그를 이끌어야 한다는!'

그리고는 몸을 돌려, 텅 빈 공동을 향해 소리친다.
'프랑켄슈타인! 오라!'

가라앉아 있던 검은 공간의 무대가 위로 올라오며 무대 전체의 바닥이 채워진다.
온몸에 서리가 내려앉아 얼어버린 듯한 프랑켄슈타인 등장.
그러나 움직임은 매우 느리고, 한걸음 앞으로 걷는 것조차 힘겨워보인다.
그야말로 실신 일보 직전이란 느낌을 준다.
빅터는 썰매를 끌고 있는데, 겨우 한 걸음 앞으로 옮기자마자 풀썩 그 자리에 쓰러진다.

'왜 그러지? 오, 추운가?'
빅터를 보면 무대가 정말 북극처럼 느껴지는데, 크리쳐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왜냐면 크리쳐는 방정맞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움직임이 가볍기 때문이다. 연신 폴짝인다.
그리고 쓰러진 빅터를 주욱 끌고 와 음식 앞에 대령시킨다.

'이리 와, 위대하신 탐험가여! 봐- 음식이 있다. 바다표범 고기!
탐험가들의 음식이지!'

조금 전에 크리쳐가 바닥에 꾸린 것은 빅터를 위한 식탁이었던 모양이다.
새빨간 고기는 전혀 식욕을 돋우게 생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빅터는 개의치 않고 얼굴을 파묻고 몇입을 힘겹게 베어문다.
상당히 오랫동안 굶주린 것 같다.

'너는 힘을 원했지. 자기자신을 봐. 스스로를 보라고.
왜 나를 범죄자 취급하지?'

그 말에 빅터가 고개를 쳐들고 겨우 이 씬에서의 첫 대사를 입에 올린다.
답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너는 내 아내를 죽였어!'

그러나 그 거센 비난에도 크리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너도 내 아내를 죽였지.'
'네가 초래한 결과야!'
솔직히 이쯤되면 무대를 뛰쳐 올라가 빅터의 멱살을 붙잡고 싶어지는데,
크리쳐의 대사가 이어진다.

'내가? 어떻게? 내가 뭘 했지? 내가 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나?
내가 오물들을 그러모아 날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던가?
나는 남들과 다르지, 그리고 그걸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누군가'가 될 수 없지?
왜 인류는 나를 혐오하지?
내게 동정심을 보여준 건 엘리자베스뿐이었다.
사랑스런 엘리자베스, 나는 아직도 그녀의 입술을 기억한다, 그 딸기같던 입술...
난 여전히 그녀 가슴의 온기를, 허벅지를 기억한다...'

빅터는 바둥거리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듯 이윽고 축 처진다.
'일어나! 가야지, 극지로! 새로운 발견을 해내야지!
뭐라고 했었지? 세상이란 어둠에 빛을 가져왔다고 했었지?! 가야지! 북쪽으로!'

빅터 주변을 가벼운 걸음걸이로 뱅뱅 돌며 목소리를 높이는 크리쳐.
그러나 빅터는 여전히 꼼짝도 않는다.
'마스터?'

크리쳐는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빅터 곁에서 자세를 낮추고 말을 건다.
'벌써 죽어버렸단 소린 하지 마. 마스터?
이제 더 이상은 기력이 없어? 왜, 우린 시작부터 힘겨웠잖아!'
그리고 아예 빅터 곁에 마주보고 누워버린다.

'날 두고 가지 마. 날 혼자 두지 마! 당신과 나, 우린 하나야!'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저릿해질 정도로 절박한 대사다.
그리고 여전히 대답없는 빅터에게 크리쳐는 급한 어조로 말을 건넨다.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나도 살아. 당신이 가버리면, 나도 가야 해.
마스터, 죽음이란 뭐지? 대체 어떤 느낌이지? 내가 죽기는 하나?
여전히 빅터는 미동도 않는다. 크리쳐의 두려움이 급증한다.

'나는 우리가 하이킹을 가는 걸 꿈꿨었어.
함께 산책하고, 이야기를 나누길 원했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여자에게 구애하는지.
내가 당신을 찾아낸 뒤로, 당신은 내게서 등을 돌리기만 했어!
왜 나를 돌아보지 않는 거지?!'



서글프다. 구슬프기 짝이 없는 독백이다.
크리쳐는 몸을 일으켜 빅터의 상체를 약간 들어 안고,
그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춘다.

'오, 프랑켄슈타인. 내 잔인함을 용서해 줘. 제발 날 용서해.
나는 계속해야만 했어, 멈출 수가 없었어.
달이 나를 비추고 있어. 저 고독한 달이!
우린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었지. 우린 되돌아갈 수가 없었어.'



그렇게 말하며 크리쳐는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술병에서 술을 잔에 옮겨 따른다.
'마스터! 마셔, 좋은 와인이야! 제발 마셔!'
그리고 그것을 빅터의 입가로 흘려넣는다.
그러나 입술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밖으로 흘러내리는 양이 더 많다.
이미 빅터의 영혼은 그 몸을 떠난 것처럼 보인다.

'내가 원한 건 당신의 사랑이었어. 나는 내 모든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했어.
가여운 나의 창조자여.'
목소리에는 물기가 섞여있다. 금방이라도 끄어어, 하고 비통한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순간에 기적처럼 빅터가 재채기를 한다.
와인이 식도로 흘러들어갔던 모양이다.

'마스터! 당신은 날 사랑해! 날 사랑한다고!'
빅터에게서 떨어져 다시 폴짝 폴짝 뛰는 크리쳐는 기쁨에 젖어있다.
빅터가 죽지 않고 살아남으로서, 크리쳐는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고독의 비탄에 잠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크리쳐는 그 어두운 기쁨을 어린아이처럼 표현한다.

빅터는 아주 약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한다.
'난 사랑이 무언지 몰라.'
크리쳐는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신이 나서 대답한다.
'내가 가르쳐 줄게!'

여기서 빅터는 처음으로, 크리쳐가 진정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납득했다는 듯한 말을 입에 담는다.
'그래.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지. 너는 영혼을 가졌고, 나는 아닌가.'
'나는 몰라! 토론해보자!'

빅터는 죽음의 직전까지 갔기에, 무언가 달라진 듯하다.
어쩌면, 2년이라는 시간동안 크리쳐를 내내 좇으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가 변했는지도 모른다.
이전의 빅터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대사를 읊는다.

'내가 가졌던 사랑의 모든 기회들을, 나는 날려버렸엇지.
모든 인간적 따스함들을 내가 조각내버렸어. 내가 이해한 건 혐오뿐이야.
공허, 절망, 나는 오래 전에 끝장나 있었어.
하지만 네가 내게 목적을 주었지.'

빅터는 스스로에게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이 인간적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너, 내가 요구한다. 가라. 걸어가! 너는 파괴되어야만 해.'

그 말에 크리쳐는 잠시 암담한 표정을 짓는다.
빅터는 살아있지만, 그의 내부 또한 큰 변화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빅터는 크리쳐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평생. 절대로.
크리쳐는 짧은 순간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한다.

그들에게는 이 길밖에 남아있지 않다.

크리쳐는 잠시 침묵하다가, 덩실덩실 춤을 추듯이 스텝을 밟으며
다시 회전하기 시작하는 무대 위에서 움직인다.
'좋아. 바로 그 정신이야! 내 비참한 삶에 끝을 선사하라고!
가라! 북으로!'

크리쳐의 대사와 함께 무대에서 잠시 사라졌던 연기가 다시 자욱이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OST가 점점 더 크게 울려퍼진다.
크리쳐는 덩실덩실 춤을 추듯이, 돌아가는 무대 위에서 움직여
무대 뒤쪽으로 간다.

무대 정면 뒤쪽의 문이 크게 열리는데, 그 안쪽은 온통 하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앞에 무엇이 더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빅터는 그 앞으로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무대 뒤편의 빛,
크리쳐를 향해 썰매를 끌고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윽고 두 사람이 무대 바깥쪽 문 밖으로 다 사라지고,
문이 닫힌다.
연기와 함께 음악도 끝을 맺는다.

그렇게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린 채로, 극은 결말에 다다른다.















전체 리뷰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제 이후에 정리할 것은...

- 벤크리쳐 / 조니빅터 - 벤빅터 / 조니크리쳐 각각 객석에서 본 느낌의 차이

- 가까이에서 본 연극은 이러했다 및 무대 뒤에서 친구들과 나눈 벤벤 이야기

- 플북과 함께 캐릭터 소개 (할까말까 미정)

...이렇게네요.



참- 그리고 마지막 씬에서 중요한 대사라 뺄 수는 없었는데, 제 영어 실력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그런 슬픈 문장이 있었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의역을 넘어서 심각하게 오역인 듯해서 이것만 일단 따로 적습니다.
(어디 이것 하나뿐이겠느냐마는...)

위에서 제가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누군가'가 될 수 없지?' 라 해석한 부분의 원문은
'Why can I not be who I am?' 입니다.
(혹시 바른 번역을 알려주실 존잘분이 계시면 점핑 절합니다. ㅜㅜ)

그럼 이렇게 제 전체 무대 리뷰는 끝을 맺습니다.
다들 상쾌한 아침 맞고 계시기를...